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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조금만 알아보면 거의 무조건 한 번은 마주치는 이름이 트렉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냥 유명한 브랜드인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 브랜드가 계속 언급되더군요. 그런데 막상 트렉의 역사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복잡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리콜 사태부터 유명 선수와의 계약 논란, 그리고 여러 브랜드 인수까지. 오늘은 트렉이라는 브랜드가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올랐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정리해봤습니다.

    위스콘신 헛간에서 시작된 47년 역사

    트렉은 1976년 미국 위스콘신주 워털루라는 작은 마을의 헛간에서 시작했습니다. 창업자인 딕 버크(Dick Burke)와 베벨 호그(Bevel Hogg)는 직원 5명과 함께 손으로 직접 스틸 프레임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고급 자전거는 대부분 유럽산이었는데, 이들은 미국산 자전거로 승부를 보겠다는 각오였던 거죠.

    세계적인 자전거 브랜드 트렉의 공동 창업자인 딕 버크와 베빌 호그
    Trek의 두 창업자 딕 버크와 베벨 호그

    브랜드 이름인 '트렉(Trek)'은 긴 여행에서 느끼는 모험의 감각을 담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투어링 바이크(Touring Bike)라고 불리는 장거리 여행용 자전거를 중심으로 만들었고, 1980년대 초반부터 로드 바이크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제가 자전거 커뮤니티에서 본 트렉의 이미지가 '무난하고 꾸준한 브랜드'였던 이유가 바로 이 긴 역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건 트렉이 산악자전거(MTB) 시장에 진출하면서 산악자전거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게리 피셔(Gary Fisher)와 협업했다는 점입니다. 게리 피셔는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운영하다가 1993년 트렉에 인수됐고, 이후 트렉의 제품 컨설턴트와 디자이너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29인치 휠을 대중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지금도 산악자전거에서 29인치 휠은 표준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2010년 트렉이 게리 피셔 브랜드를 메인 브랜드로 통합하면서, 다운튜브에 있던 게리 피셔 로고가 사라졌습니다. 일부 모델의 탑튜브에만 이름이 남았는데, 이때 게리 피셔 브랜드의 팬들 사이에서는 아쉬움이 컸다고 합니다. 저도 옛날 게리 피셔 모델 사진을 보면서 '이 디자인이 사라진 게 좀 아쉽긴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랜스 암스트롱 스캔들과 법적 분쟁들

    트렉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과의 관계입니다. 트렉은 1998년 암스트롱과 계약을 맺었고, 그는 이후 7년 연속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했습니다. 당연히 트렉의 매출은 급증했고, 암스트롱의 훈련 코스였던 프랑스 니스 인근의 '콜 드 라 마돈(Col de la Madone)'에서 이름을 따온 '마돈(Madone)' 모델도 출시됐습니다.

    하지만 2012년 미국 반도핑 기구(USADA, United States Anti-Doping Agency)가 암스트롱과 그의 팀이 조직적으로 도핑을 했다는 상세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암스트롱은 7개의 투르 드 프랑스 타이틀을 모두 박탈당했고, 트렉을 포함한 대부분의 스폰서가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당시 트렉은 모든 마케팅 자료에서 암스트롱 관련 콘텐츠를 삭제했다고 합니다.

    솔직히 이 사건은 트렉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줬지만, 역설적으로 초기에 암스트롱 덕분에 얻은 성장이 워낙 컸기 때문에 지금의 트렉이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트렉이 결국 브랜드 생존을 위해 빠르게 선을 그은 건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봅니다.

    또 다른 법적 분쟁도 있었습니다. 트렉은 투르 드 프랑스 최초의 미국인 우승자인 그렉 르몽(Greg LeMond)과 1995년부터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그의 이름을 단 자전거를 판매했습니다. 그런데 르몽은 도핑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왔고, 특히 암스트롬의 도핑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습니다. 2001년 르몽은 "만약 랜스가 클린하다면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컴백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대의 사기"라고 말했습니다.

    트렉은 르몽의 발언이 암스트롱과의 비즈니스 관계를 해치고 르몽 브랜드 자전거 판매에도 악영향을 줬다며 2008년 계약을 종료했습니다. 르몽은 트렉이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자신을 침묵시키려 했다며 트렉을 고소했고, 트렉도 맞고소했습니다. 다행히 2010년 양측은 비공개 합의에 도달했고, 트렉 CEO 존 버크(John Burke)는 향후 르몽의 반도핑 활동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렉 르몽은 사이클 역사에서 도핑에 맞서 목소리를 낸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자전거 안전과 관련된 대규모 리콜 사태도 있었습니다. 2015년 트렉은 거의 100만 대에 가까운 자전거를 리콜했습니다. 문제는 앞바퀴 퀵 릴리스(Quick Release) 레버였습니다. 퀵 릴리스란 공구 없이 손으로 레버를 돌려 바퀴를 빠르게 탈착할 수 있는 장치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바퀴를 간편하게 빼고 끼울 수 있게 해주는 부품인데, 이 레버가 잠금에서 열림 상태로 넘어갈 때 180도 이상 회전하면서 디스크 브레이크에 닿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던 겁니다.

    이 결함으로 세 건의 사고가 보고됐고, 그중 한 명은 하반신 마비라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리콜 대상은 2000년부터 2015년 사이에 생산된 앞 디스크 브레이크 장착 트렉 자전거 전체였습니다. 트렉은 새로운 퀵 릴리스 레버를 무상 교체해주고 20달러 쿠폰을 제공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아무리 큰 브랜드라도 기계적 결함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브랜드 인수와 현재 위치

    트렉은 성장 과정에서 여러 브랜드를 인수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게리 피셔 외에도 클라인 바이크(Klein Bikes)라는 브랜드를 1995년에 인수했습니다. 클라인 바이크는 1977년 게리 클라인(Gary Klein)이 창업한 회사로, 화려한 도색으로 유명했습니다. 당시 다른 브랜드에서는 볼 수 없던 독특한 컬러의 자전거를 만들었는데, 지금 봐도 정말 예쁩니다. 솔직히 요즘 자전거들이 왜 이렇게 디자인이 밋밋해졌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클라인 바이크는 품질도 좋았지만 대형 브랜드와 경쟁하기 어려웠고, 결국 트렉에 인수됐습니다. 트렉은 생산 공장을 워싱턴주 차할리스에서 다른 주로 옮겼는데, 이때부터 클라인 팬들 사이에서는 "원조 차할리스산 클라인만이 진짜"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이베이(eBay)에서 이전 차할리스 공장에서 만든 클라인 프레임이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고 합니다. 약 10년 후 트렉은 클라인 브랜드를 완전히 폐기하고, 그 기술을 트렉 브랜드에 통합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트렉이 애너그램(Anagram, 철자 순서를 바꿔 다른 단어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로드 바이크 모델인 '마돈(Madone)'은 프랑스의 '콜 드 라 마돈'에서 따왔고, '도메인(Domane)'은 마돈을 재배열한 이름입니다. 도메인은 올로드 바이크(All-Road Bike)로 분류되는데, 올로드 바이크란 로드 바이크보다 타이어 폭이 넓어 비포장 도로에서도 탈 수 있는 다용도 자전거를 뜻합니다. 그리고 경량 클라이밍 바이크인 '에몽다(Émonda)'도 있습니다. 발음은 '에몬다'인지 '에몽다'인지 커뮤니티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현재 트렉은 워털루 본사가 엄청나게 큽니다. 전용 자전거 트레일, 피트니스 센터, 카페, 심지어 바까지 있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원하는 자전거를 데모로 탈 수 있고, 팬데믹 기간에는 필수 근로자들에게 자전거와 수리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했다고 합니다. 워털루는 이제 사실상 '트렉 타운'이라고 불릴 정도로 트렉이 지역 최대 고용주입니다. 창업 당시 사용했던 헛간도 아직 남아 있어서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하네요.

    다만 아쉬운 소식도 있습니다. 트렉이 40년 넘게 만들어온 투어링 바이크 모델인 '520'이 단종됐습니다. 520은 스틸 프레임에 수많은 마운팅 옵션이 있어서 장거리 여행자들에게 사랑받았던 모델입니다. 투어링 바이크는 특별한 기술 혁신이 필요 없는 카테고리라 오랫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는데, 그게 오히려 매력이었죠. 나중에 디스크 브레이크 버전도 나왔지만 판매량이 신통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제 생각엔 요즘 사람들이 투어링보다는 그래블 바이크 쪽으로 눈을 돌린 것 같습니다.

    한편 트렉은 재미있는 프로토타입도 만들었습니다. 2012년 영화 '트론(Tron)'에서 영감을 받은 어린이용 밸런스 바이크를 디자인했는데, 보기엔 멋있지만 바퀴가 제대로 굴러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장식용인 듯합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2025년인데 아직도 실제로 탈 수 있는 트론 바이크가 안 나온 게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법적 분쟁 하나 더. 2018년 코미디언 크리스 팔리(Chris Farley)의 가족이 트렉을 상대로 1,0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트렉의 팻 바이크(Fat Bike) 모델 이름이 '팔리(Farley)'였는데, 크리스 팔리 가족은 트렉이 의도적으로 유명한 뚱뚱한 코미디언의 이름을 따서 팻 바이크를 지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팻 바이크란 눈길이나 모래사장 같은 곳에서 탈 수 있도록 타이어가 매우 두껍고 넓은 자전거를 뜻합니다.

    크리스 팔리 가족 측은 트렉 임원들이 팻 바이크에 '팔리'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유명한 뚱뚱한 코미디언을 떠올리도록 유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행히 양측은 금액을 공개하지 않은 채 합의했고, 트렉은 '팔리'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송이 조금 억지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합의로 마무리된 걸 보면 양측 모두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본 것 같습니다.

    정리하면 트렉은 자전거 업계에서 오래 버텨온 브랜드인 건 맞지만, 완벽한 브랜드는 아닙니다. 리콜 사태도 있었고 법적 분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트렉이 위기 상황에서도 빠르게 대응하고, 꾸준히 제품을 개선해왔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신뢰가 간다고 봅니다. 자전거를 처음 알아보는 분들에게는 여전히 무난한 선택지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다만 가격대가 높다는 의견이 많으니, 다른 브랜드와 충분히 비교해보고 선택하시길 권합니다.

    1976년에 생산된 초기 트렉(Trek) 710 프레임 중 하나
    100대 한정으로 만들어진 1976년 처음 TREK의 이름으로 생산된 710 프레임 모델

    --- 참고: https://youtu.be/Mif-7WZk0hM?si=dWkLU7c0zbEPKhY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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