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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언트는 연간 630만 대 이상의 자전거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자전거 제조사입니다. 하지만 CEO 안토니 로(Antony Lo)의 인터뷰를 보면, 이 회사가 단순히 자전거를 많이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인터뷰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자이언트가 자전거를 파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타는 문화 자체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광고보다 매장 경험을 중시하고, 소비자가 자전거를 어떻게 선택하고 즐기는지까지 브랜드 안에 담으려는 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매장 경험이 브랜드를 만든다는 철학

    안토니 로 CEO는 스타벅스를 예로 들며, 자이언트의 마케팅 전략을 설명했습니다. 스타벅스는 광고를 거의 하지 않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압니다. 비결은 매장에서의 경험이었습니다. 자이언트도 이 방식을 자전거 산업에 적용했습니다. 전통적인 자전거 딜러는 여러 브랜드를 함께 취급하다 보니, 자이언트가 의도한 제품과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이언트는 직접 운영하는 매장을 늘리기 시작했고, 현재 전 세계에 약 2,500개의 자이언트 전용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출처: 자이언트 공식 홈페이지).

    지금은 은퇴한 자이언트 전 CEO 안토니오 로. 인터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Giant 전 CEO Antony Lo

    제가 직접 자이언트 매장에 가봤을 때도 이 철학이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자전거를 진열해놓은 게 아니라, 로드바이크·산악자전거·라이프스타일 자전거 등 용도별로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핏팅 시스템(fitting system)이라는 걸 통해 소비자의 체형과 라이딩 스타일에 맞는 자전거를 추천해주더군요. 핏팅 시스템이란 시뮬레이터와 컴퓨터를 활용해 소비자에게 최적의 자전거 사이즈와 모델을 찾아주는 과정을 뜻합니다. 이런 서비스는 초보자에게 특히 유용했습니다. 자전거를 처음 사는 사람은 어떤 모델을 골라야 할지 막막한데, 자이언트 매장에서는 직원이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실제로 시뮬레이터에 앉아 체험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모든 소비자에게 맞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자전거 한 대 사고 싶을 뿐인데, 브랜드가 제시하는 '경험'까지 따라가야 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이 시스템이 편하다고 느꼈지만, 동시에 약간 정해진 틀 안에서 선택하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자이언트는 소비자가 자전거를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까지 어느 정도 방향을 제시하는데, 이게 편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브랜드가 설계한 세계 안에서만 움직이게 되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자전거 문화를 확대하는 전략

    자이언트는 자전거를 파는 것보다 자전거를 타는 문화를 키우는 데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안토니 로 CEO는 "우리는 모두 선교사입니다. 모든 자이언트 매장은 교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표현이 과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자이언트가 자전거 산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대만에서는 자이언트가 정부와 협력해 자전거 도로를 3,000km 이상 구축했고, 자전거 투어 회사를 설립해 대만 일주 투어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공 자전거 시스템인 유바이크(UBike)도 자이언트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은 단순히 자전거를 많이 팔기 위한 게 아니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늘려서 전체 시장을 키우려는 전략입니다. 시장이 커지면 자이언트뿐 아니라 다른 브랜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안토니 로 CEO의 생각입니다. 실제로 자이언트는 경쟁사를 적으로 보지 않고, 일부 브랜드는 여전히 자이언트의 고객이기도 합니다. 자이언트 전체 매출의 70%는 자체 브랜드이고, 30%는 다른 브랜드를 위한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생산입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흥미롭게 느낀 건, 자이언트가 저가 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미국 최대 소매업체인 월마트는 평균 100달러짜리 자전거를 팔지만, 자이언트의 entry 모델은 300달러부터 시작합니다. 안토니 로 CEO는 "우리는 월마트와 경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프리미엄 품질과 최고의 가치를 제공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멋있게 들리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소비자 계층을 선별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300달러도 누군가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이니까요. 자전거 문화를 확대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브랜드 경험이 설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 대만 내 자전거 도로 3,000km 이상 구축 지원
    2. 자전거 투어 회사 설립 및 대만 일주 투어 조직
    3. 유바이크(UBike) 공공 자전거 시스템 운영
    4. 전 세계 2,500개 이상의 자이언트 전용 매장 운영

    R&D 투자와 경쟁 전략

    자이언트는 매년 매출의 3~4%를 연구개발(R&D, Research and Development)에 투자합니다. R&D란 신제품 개발과 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 활동을 뜻하며, 자이언트는 이를 통해 자전거뿐 아니라 사이클링 과학(cycling science) 분야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노트북 제조사 중 R&D 투자 비율이 가장 높은 에이수스(ASUS)도 약 3% 수준인데, 자이언트는 이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비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전거 산업은 역사가 240년이나 된 오래된 산업이고, 진입 장벽도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하고 마진도 적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이언트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지속적인 혁신과 효율성 개선입니다.

    제가 흥미롭게 본 부분은, 자이언트가 자사의 공장들을 서로 경쟁시킨다는 점이었습니다. 대만·중국 등 여러 나라에 공장이 있는데, 각 공장에 특정 제품만 할당하지 않고 서로 경쟁하도록 유도합니다. 안토니 로 CEO는 "스스로 경쟁하지 않으면 남과 경쟁하게 됩니다. 죽을 거라면 남한테 당하느니 내 사람한테 당하는 게 낫죠"라고 말했습니다. 이 방식은 공장들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생산하도록 자극하지만, 동시에 내부 경쟁이 과열될 위험도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방식이 직원들에게 과도한 압박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자이언트는 이를 통해 대만 공장에서도 평균 FOB(본선 인도 가격) 600달러의 고가 자전거를 연간 100만 대 이상 생산하고 있습니다.

    Giant 로드 자전거 프레임이 생산 공정

    자이언트는 또한 도요타 생산 시스템(Toyota Production System)을 적극 도입해 낭비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제조 과정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자재와 인력을 최적화하는 방법론입니다. 자이언트는 연간 630만 대 이상의 자전거를 생산하는 규모 덕분에 부품 공급사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원가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인건비 상승과 같은 비용 증가를 상쇄하고 있지만, 그 이익이 모두 마진으로 남는 건 아니라고 CEO는 설명했습니다. 비용 절감분은 다시 품질 향상과 가격 경쟁력 유지에 쓰인다는 뜻입니다.

    자이언트는 또한 인재 채용에서도 독특한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토니 로 CEO는 "우리는 지원자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무엇을 전공했는지는 크게 중요하게 보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태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이언트는 자체적으로 '자이언트 대학(Giant University)'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직원들을 자사의 방식으로 훈련시킵니다. 이는 학력이나 전공보다 회사에 대한 헌신, 자전거에 대한 애정, 배우려는 의지, 팀워크를 더 중시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최근 자이언트에 입사하는 직원들에게 지원 동기를 물어보면, 대부분 "자전거를 좋아해서"라고 답한다고 합니다.

    정리하면, 자이언트는 단순히 자전거를 많이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자전거 문화를 만들고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회사입니다. 매장 경험을 중시하고, 자전거 타는 사람을 늘리기 위해 인프라와 커뮤니티를 구축하며, 지속적인 R&D 투자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브랜드 철학이 너무 강해서 소비자가 브랜드가 제시하는 방식 안에서만 선택하게 되는 측면도 있고, 가격대가 높아 접근성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자이언트가 세계 최대 자전거 회사가 된 이유는, 제품만이 아니라 문화와 경험까지 함께 판다는 데 있습니다. 자전거를 고민 중이라면, 자이언트 매장을 한 번 방문해 그들이 말하는 '경험'이 무엇인지 직접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참고: https://youtu.be/jCe-KOzlhH0?si=HrrJDLSkp3zVW3Gr

    참고로 여기 인터뷰에 나오는 Antony Lo는 지금 CEO가 아니다. 자이언트를 키운 전 CEO고, 현재는 은퇴한 상태다. 지금 자이언트 그룹 CEO는 Phoebe Liu고, 2025년부터는 완전히 다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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